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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닝 차이나 - 중국의 근현대사를 논하다.

by 마리우온 2017.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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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중국은 한국에겐 멀면서도 가까운 국가입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제외한 모든 외침은 중국으로부터 유래했고, 문화적 영향력도 중국에서 받은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은 청나라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이념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어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는데요.

오늘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도서 거버닝 차이나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근,현대사


중국의 근,현대사는 쑨원의 신해혁명부터 많이들 설명합니다. 삼민주의 아래 민족주의노선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은 당시 세계정세에 따라 자유진영의 국민당과 사회주의 계열의 공산당이 북쪽과 남쪽을 중심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방의 군사세력들을 토벌하던 장제스와 공산당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이 각 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국민당은 후기로 갈수록 숫자에서나 화력에서나 공산당을 압도했습니다. 특히, 만주사변으로 인해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난 뒤, 공산당은 절대로 국민당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전력이 역으로 국민당의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당은 부정부패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러한 부패를 틈타 중국 공산당이 세력을 잡고 중국인민공화국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장제스의 일행은 대만으로 도피해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합니다. 마오쩌둥의 사후, 덩샤오핑에 의해 두 국가는 수교 정상화를 이룹니다.

마오쩌둥의 공화국설립 이후, 스탈린 사망으로 소련으로부터 더 이상의 지원이 기대되지 않고 거기에 6.25전쟁으로 미국과도 완전히 척을 지게 된 마오쩌둥은 중국민 스스로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스스로가 계획하고 실천하였던 대약진 운동은 철강을 주조하고, 인민공사와 같은 대규모 집단 농업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농업 생산력과 철강 생산력을 극대화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그의 과학에 대한 무지로 참혹한 실패를 겪습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정권의 일선에서 마오쩌둥은 물러나게 됩니다. 덩샤오핑과 류사오치는 이 때 정권을 잡아 경제 개방화와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중국의 경제 회복을 꾀하게 됩니다. 마오쩌둥은 이들이 가는 길이 자본주의로 가는 길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어린 아이들에게 교주주의 사상을 가르치고 해서파관을 꼬뚜리 잡아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문화대혁명은 근본적 사회주의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과거의 문화유산은 부서졌고, 마오쩌둥에 의해서 육성된 홍위병들은 그들의 스승,형제들을 도륙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을 완전히 분해하고 인민해방군을 이끌고 자신이 다시 정권을 주도하게 됩니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의 시기말 마오쩌둥을 보필하던 저우언라이는 덩샤오핑을 다시 복권시키고 정계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줍니다. 마오쩌둥은 죽기 전, 화궈펑에게 모든 전권을 부임하고 사망합니다.

화궈펑은 마오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았지만, 국가를 경영할 그릇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정치 고단수인 덩샤오핑은 그가 배척하고자 했으나 그는 마오의 상대가 되지 못 했습니다. 11기 3중전대를 계기로 덩샤오핑은 중국 정치복권에 성공합니다. 후샤오방과 자오쯔양의 실천적 이론을 토대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합니다.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부분적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야시장을 개방해 잉여생산물을 교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일본,대만과 수교 정상화를 하였고, 영국과는 담판승부를 통해 홍콩의 반환을 약속받았습니다. 연안지방은 경제특구로 지정,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외국인들의 직접투자또한 부분적으로 허용해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을 집약해주는 것은 ‘흑묘백묘론’으로 그가 꿈꾸었던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선 그 방법이 어떻게 되더라도 즉, 자본주의와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상관없다고 덩샤오핑은 생각했습니다. 외부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더라도 그는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한 시위에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유혈진압함으로써 중국이 가야할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라고 세계에 천명하였습니다.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를 지나 현재의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중국의 역사는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체제는 아직도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구조


중국의 사회 지배구조는 독특합니다. 중국은 그들의 믿음에 따라, 공산당 1당 주도아래, 모든 것이 이루어 집니다. 당이 모든 결정의 핵심이며, 그들의 주도 군대인 인민해방군도 당의 소속입니다. 5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는 공산당원과 상무위원회를 선발하는 자리로 가장 중요한 자리이자, 모든 핵심적 권력이 정해지는 자리입니다. 5년마다 열리는 이 자리에서 매년 있는 사건들을 다루기 위한 대표단인 상무위원회가 이 전국대표대회에서 승인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매해 전국민인대표대회를 엽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더불어 두개의 큰 회의로 불리는 대회로 헌법의 해석, 각종 성급단위의 행정처리등을 처리합니다. 또 이외에 당 총서기, 국가 주석, 군사위원회 주석을 선출합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국공합작과 함께 탄생한 기구로 그 때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핵심 권력은 당의 총서기이며, 국가 주석은 그 다음의 결론을 가집니다. 당이 당군사위원회를 통해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물론, 국방부가 있지만, 그 실권은 없습니다. 그들의 이념적 믿음은 공산당의 이상적 지휘아래 모두가 잘 사는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어떤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도 당에대한 비판 자체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중국의 행동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을 이끈 두 이데올로기


중국의 근,현대사는 두 명의 인물과 두 개의 이데올로기로 대표됩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죠.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을 이끈 수장으로 그 자신이 혁명의 수장이었으며,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갈망을 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일생에 있어서 계급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사람들은 모이기만 해도 계급이 생성되기에 지속적으로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는 계속혁명을 주창했습니다.

그는 지식이 그 자체로 계급을 형성한다고 믿었기에 지식인들을 배척해왔습니다. 그는 인민들이 힘을모아서 단합하고 인간이 의지력을 가지면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그는 순수한 사회주의의 실현과 인민들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결과 자체는 참패였습니다. 그 자신의 과학지식에 대한 무지로 멀쩡한 쇠들을 모두 망가뜨렸으며, 참새들을 학살해 거꾸로 역병을 일으킨 행동은 마오쩌둥의 큰 실패중에 한 가지입니다. 허나, 그가 그 스스로의 지극히 지고지순하게 믿었던 신념아래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측면또한 존재합니다.

현재는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우세한 체제라는 것을 선전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버렸습니다. 공산주의는 체제적으로 일인 혹은 한 당의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므로 한 명 혹은 한 집단의 잘 못된 선택으로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자유-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언제나 대안제가 존재하며 재앙적 사건의 영향이 사회 전체까지 퍼지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덩샤오핑또한 혁명의 수장으로 그 자신도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을 함께한 동지였습니다. 그는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함께 마오쩌둥에게 숙청당했으며, 노동캠프에서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마오쩌둥과 함께한 시간동안 총 세번의 숙청을 당했으며, 그 모든 기간동안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이후, 잠깐 류사오치와 정권을 잡은 기간이 있지만, 문화대혁명과 함께 다시 자리를 잃습니다. 긴 인고의 시간이 끝난 뒤, 재기한 그를 통해 중국은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현재 처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은 무엇보다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변에 잘 사는 나라인 자본주의 국가들을 배워 그 체제들을 중국에 적용했습니다. 4개분야인 농업, 국방, 과학기술, 공업의 현대화를 목표로 서구적 자본주의의 체제를 중국 사회주의에 적용했습니다.

허나, 그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꿈꾼 사회주의자로 그 자신또한 마오쩌둥이 꿈군 ‘중국식 사회주의’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 주장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자유경쟁, 사유재산인정, 과학기술 장려를 통해 지금의 중국 경제발전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전과는 중국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마치며

중국의 오늘은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들에게 있어선 혁명의 완수과정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 상황으로 인식됩니다. 물론, 자라나는 중국청년세대에 있어서 그런 이념적인 것은 그렇게 크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도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서입니다. 물론,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이해하기 쉬운 도서는 아닙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면 도움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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