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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국 경제의 성장과 쇠락 -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by 마리우온 202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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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많은 암시를 담고 있는 하나의 빅 아이디어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경제성장은 몇백 년 동안 일정한 속도로 경제적 발전을 창출하는 꾸준한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성장은 어떤 특정 시기에 더 빠르게 이루어진다. 1770년까지 수천 년 동안 경제성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1770년부터 1870년까지 100년 동안의 과도기에 성장은 느리게나마 기지개를 켰고, 이후 1970년까지 이어지는 100년 동안에는 눈부실 정도의 급속한 성장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성장은 둔화되었다. 나의 핵심 주장은 어떤 발명은 다른 발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고, 우리가 '위대한 발명'이라고 부르게 될 유독 19 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어떤 사건들에 의해 남북전쟁이후의 혁명적 세기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 본문 중 -

미국 경제의 성장과 쇠락 -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경제성장 – 무엇이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는가?

이 도서는 미국의 경제성장시기를 조명하는 도서입니다. 두꺼운 뚜께만큼이나 상세한 내용들로 가득차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미국의 유래없는 경제성장은 우리의 생활수준을 혁신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기임을요. 그 후에도 혁신이라고 할만한 발명들이 꾸준히 이뤄지기는 했으나, 이전의 발전만큼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만큼은 되지 못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컴퓨터와 관련된 발명들이지요. 우리의 직관과 달리 컴퓨터의 발명이후, TFP(Total Factor Protuctivity) 즉, 총요소생산성은 정체를 겪고 있습니다. 이는 지속적인 발명에도 불구하고, 이전만큼 큰 폭의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지는 못 했음을 말하지요. 

도서는 1부 1879 ~1940년의 시기, 2부 1940년 ~ 2015년의 시기, 3부 성장속도의 정체. 미래의 성장은 가능할까?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어떻게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생활양식과 거주방식의 변화 그리고 통신의 발전 등등은 이전의 생활상과 현대를 구분할 정도로 큰 변화였지요. 지금의 휴대폰이 3G에서 4G에서 변화한 것은 분명 혁신이었지만, 처음 휴대폰이 보급된 것만큼은 아니였습니다. 최초의 발명은 지리적인 거리감을 극단적으로 낮추었기 때문이지요. 

2부에서 다루는 1940 ~ 2015년대의 혁신 역시 비슷한 맥락입니다. ATM, Excel 그리고 Tablet 등등 컴퓨터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업무방식을 온전히 바꾸어버린 최초의 발명만큼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 했습니다. 노트북이 아무리 가벼워지고 성능이 올라가더라도 처음 데스크톱에서 사진을 편집할 때만큼의 변화는 되지 못 한것이죠. 

3부는 지금의 성장속도의 정체 그리고 미래는 또 다시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꾸준하게 우상향하는 것이 아닌,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는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래에도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이 아니라면 성장은 정체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이와 밀접한 내용이랍니다. 기존의 3차산업혁명만큼 큰 폭의 변화가 앞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 용어이니까요. 앞으로 세상은 어떤식으로 변화하게 될까요?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제대로 된 변화라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 변화를 맞닿아 뜨리고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국내도서
저자 : 로버트 J. 고든(Robert J. Gordon) / 이경남역
출판 : 생각의힘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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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기억에 남는 문구들

0. 이 책은 수많은 암시를 담고 있는 하나의 빅 아이디어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경제성장은 몇백 년 동안 일정한 속도로 경제적 발전을 창출하는 꾸준한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성장은 어떤 특정 시기에 더 빠르게 이루어진다. 1770년까지 수천 년 동안 경제성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1770년부터 1870년까지 100년 동안의 과도기에 성장은 느리게나마 기지개를 켰고, 이후 1970년까지 이어지는 100년 동안에는 눈부실 정도의 급속한 성장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성장은 둔화되었다. 나의 핵심 주장은 어떤 발명은 다른 발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고, 우리가 '위대한 발명'이라고 부르게 될 유독 19 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어떤 사건들에 의해 남북전쟁이후의 혁명적 세기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1. 특별한 세기가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생활이 완전히 달라 있을 뿐 아니라, 전기와 관련된 것을 비롯하여 내연기관, 신체적 건강, 근로조건 그리고 가정의 네트워킹 등 변화의 크기와 분야가 대단하고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1970년 이후에도 발전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엔터테인먼트, 통신, 정보기술 등 좁은 분야에 집중된 발전이었다. 이 분야 의 진보는 '위대한 발명’의 부산물이 그랬던 것만큼 대단하고 갑작스럽게 도착하지는 않았다. 대신 변화는 점진적이고 지속적이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에  나타난 TV는 대량 보급된 만큼이나 영화관을 찾는 발길을 듬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영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는 TV 프로 그램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수백 개의 채널 시대가 열린 이후로 영화와 TV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TV는 라디오도 몰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TV는 거실 한복판 을 차지하는 가구였던 라디오를 작고 휴대할 수 있는 기기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차 안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TV가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이었다. 그래도 TV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TV는 크고, 평평하고 고화질 컬러 스크린이 일반화되면서 더 좋아지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2. 미국 주택의 혁명적 변모는 이것이 두 번 다시 일어나기 힘든 일회성의 발명이었다는 이 책의 주요 주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현대의 편의품은 1929년에야 도시로 들어갔고 작은 마을과 농촌에 이르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런 현대의 편의품이 가정에 들어간 뒤에 변모는 완결되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새로운 발명이 꾸준히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소비자 가전제품은 대부분 1940년에 발명되었고, 각 가정에서 그런 것들을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에어컨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1940년 이후로는 어떤 발명품도 이번 장에서 논의한 발명품처럼 몸을 움직여서 하던 일을 스위치 하나를 딸깍거리고 수도꼭지를 돌려 해결한 것만큼 일상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3. 한 가정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소득 수준이지만 소득의 꾸준함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장에서 다룰 문제는 각 가정이 정해진 기간에 별다른 기복 없이 일정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도를 해주는 제도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소비자금융과 보험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소비자금융은 집이나 내구소비재를 구입할 때 필요한 돈 을 모아놓지 않았어도 일정 기간에 그 돈을 나누어 지불하여 구입하게 해준다. 보험은 화재로 인한 손실, 가장의 죽음 등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금전적으로 보상함으로써 변동성을 줄여준다.
4. TV는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TV는 “19세기 이래로 현대인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공간 이동의 꿈을 제시하면서 궁극적인 소통 경험으로 추앙받았다. TV 때문에 인쇄매체나 라디오나 영화가 고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구매체들은 고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 길을 밟았다. 마크 트웨인은 런던에서 전보를 쳤다. “내가 죽었다는 기사는 많이 과장된 것이다.”
5. 오래전부터 역사학자들은 말해왔다. “자동차는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제대로 입양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이 앞장서서 자동차를 비싸지 않은 대중교통 수단으로 바꿨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특히 헨리 포드같은 개척자들의 공이 컸다. 그러나 초기에 내연기관의 개발을 주도했던 것은 벤츠, 오토, 다임러, 마이바흐 등 독일인들과 푸조, 에밀르바소 등 프랑스인들이었다. 그런 자동차 혁신 의지가 1900년에서 1910년까지의 10년 사이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당시 독일 창업자들이 은퇴하거나 사망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 기업가들이 메르세데스 등 독일의 자동차 제조 기술을 열심히 베꼈기 때문이다. 
6. 생애주기 외에 시간의 경과에 따른 생활수준은 삶의 각 단계가 넘어갈 때마다 향상되었다. 자녀들은 예전보다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힘겹고 지루하고 천대받는 일을 벗어나 보다 즐거운 판매 서비스, 화이트칼라 등의 직종을 택하면서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갖게 되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와 같은 해에 태어난 1882년생 아이들은 1880년대의 대대적인 이주 물결을 타고 부모를 따라 미국에 발을 들였고, 어린 시절을 대도시의 비좁은 이주 노동자 숙소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1910년경에는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는 집에서 승용차를 마련하고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부모는 1882년에 태어나고 아이는 1910년에 태어났으니 부모 자식이 모두 다 안전과 편리함에서 새로운 세계를 연 1920년대의 소비재 혁명을 함께 지켜봤을 것 이다. 1910년생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녔을 확률이 크고 일부는 대학 에 진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1940년쯤에 태어나 가전 제품, TV, 죽음기와 음반에 둘러싸여 1950년대를 보낸 뒤 자기 차를 가졌을 것이다.”
7. 시골이든 도시든 주부의 일 중 가장 큰 고역은 깨끗한 물을 집으로 가져오고 더러운 물은 내다버리는 일이었다. 20세기 초에도 노동자의 아내들은 거리에 있는 급수전에서 물을 받아왔다.. 시골 아낙들이 가까운 우물이나 나가에서 물을 걷던 이날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몸을 씻고 옷을 빨고 청소를 하는 데 필요한 물은 전부 밖에서 날리야 했고, 쓰고 난 물은 다시 내다 버렸다. 
8. 자동차는 생명이 없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자동차는 집 가까이 둘 수 있고 어디든지 몰고 갈 수 있으며 목적지에서 시동을 꺼놓으면 그만이었다. 먹이를 주고 돌봐줄 필요도 없었다. 말을 빌리고 묶어둘 공간이나 돌봐줄 여유가 없는 도시의 거주자들 중에는 이미 1900 년부터 1915년 사이에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도 있었다. “자동차는 또한 안전하고 사적인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자동차는 집의 연장이었다. 자동차는 전에 없이 더 멀리 더 빨리 여행하는 그 순간에도 사람들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 
9. 결론: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혁명

5장과 앞선 4장에는 이 책이 말하려는 논지의 핵심이 담겨 있다. 현대의 편의품이 몰고 온 변화는 내연기관으로 가능해진 교통혁명과 함께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아울러 이들 발명은 시골이 더 많은 인구를 품었던 나라를 도시사회로 이행하도록 부추겼다. 도시의 비율이 100%를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변화였다.
10. 전선이 아니라 공중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은 상업 라디오의 도입을 앞당겼다. 에디슨이나 벨 같은 특정 이름과 관련된 19세기 위대한 발명이 대부분 그렇지만, 라디오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최 초의 발명은 수십 년 전으로 올라간다.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처음으로 무선전신 특허를 획득한 것은 1896년이었지만, 그보다 30여 년 전인 1864년에 제임스 클락 맥스웰 James Clark Maxwel이 처음으로 전자파 이론 을 내놓았다. 전파를 보내고 받는 최초의 실험은 1879년 12월 런던에 서 데이비드 휴즈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달 칼 벤츠는 최초로 사업성이 있는 내연기관을 개발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두 달 뒤였다. 1899년 신문에 실린 어떤 기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휴즈의 업적을 이렇게 요약했다. “1879년의 실험은 사실상 헤르츠 이전의 전자기파, 브랜리 이전의 코히러(검파기), 마르코니 이전의 무선 전신에 버금가는 발견이었다. 
11. 1870~1900년 사이에 방부제 즉 '소독약'이 개발되면서 수술 후유증으로 신체 일부를 절단하거나 사망하는 환자의 수는 크게 줄었다. 남북 전쟁 직후 소독약의 핵심 기술을 찾아낸 사람은 영국 글래스고 왕립 원 Glasgow Royal Infirmary의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였다. 요즘도 널리 사용되는 상표인 구강청결제 리스터린 Listerine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리스터는 공기로 감염되는 세균이 상처를 곪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수술할 때 상처의 세균부터 죽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처음으로 사용한 소독약은 석탄산(페놀)이었다. 하지만 석탄산은 효능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새로운 소독법이 계속 개발 되어 의사의 손, 수술기구, 장갑, 옷 등의 소독에 사용되었다. 병원 내 감염으로 사망한 대표적인 사례는 1881년에 암살자가 쏜 총탄에 목숨 을 잃은 가필드 대통령이다. 의사들은 소독하지 않은 기구와 손가락을 사용하여 탄알을 꺼냈다. 가필드의 죽음은 2차 감염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12.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너무 소심할 것도 너무 까다롭게 생각할 것도 없다. 삶은 원래 하나의 실험이다. 실험이 많을수록 결과는 좋아진다.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3. 휴대폰을 구입한 것은, 어떤 유행이나 첨단 기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핸드폰은 필수였다. 내일 밤 정확히 어디서 몇 시에 만날지 등 약속 내용을 미리 정하곤 했던 친구들은 언제부턴가 그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다. 약속 시간을 대충 정한 다음 그 시간이 가까워지면 문자를 보내거나 직접 통화를 해서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조정했다. 나도 그 축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휴대폰 을 구입했다.
14. TV가 나오면서 신문은 뉴스를 가장 먼저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신문은 TV에 뒤지지 않기 위해 보다 심층적인 취재를 하거나 TV 카메라의 손길이 닿지 않는 특별한 사건을 찾아내려 애를 썼다. 신문은 뉴스를 보도한 뒤 해석을 독자들에게 맡기던 방식을 버리고, 사건을 직접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타임’이나 ‘뉴스위크’처럼 한 주동안 일어난 사건의 복잡한 의미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여 내놓는 시사주간지의 성공은 많은 신문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었고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더구나 TV로 인해 스포츠가 큰 인기를 끌게 되자, 1960년대에 많은 신문들은 지면의 약 20%를 스포츠 섹션으로 할애했다. 이처럼 신문은 멈출 수 없는 비탈길을 내려가면서도 TV가 채우지 못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15.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혁신으로 대약진을 설명할 수 있는가

앞서 1부에서 위대한 발명을 설명하면서 원래의 발명과 그로부터 파생된 보조적 기능의 하위 발명을 구분했었다. 19세기 말의 발명 중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전기와 내연기관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하위 발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범용 기술 General Purpose Technology, GPT’이라고 불린다.
16. 2004년 이후로 평범해진 TFP의 증가 속도는 1990년대 말의 반등이 일시적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더욱 알다가도 모르는일은 1970~1994년까지 사반세기 동안에 TFP의 상승을 자극할 만한 뚜렷한 요인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1960년대에 은행거래내역서와 전화요금고지서를 만들어냈고, 1970년대에는 항공된 예약을 쉽게 해주었다. PC와 ATM, 바코드 스캐너는 1980년대의 생산성을 증가시킨 혁신적 아이디어였다. 이런 혁신들이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로버트 솔로는 이렇게 비꼬았다. “어디를 보아도 컴퓨터 시대를 실감할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그 같은 사실을 실감할 수 없다. 이 기간에 둔화된 TFP의 증가 속도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받았던 혜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컴퓨터가 없었을 경우 경제의 다른 부분에서의 생산성 증가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17. MIT의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 다니엘라 러스 소장은 지금까지 개발도니 로봇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로봇의 추리력의 범위는 전적으로 프로그램에 갇혀 있다.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 가령, ‘여기 와본 적 있어?’같은 질문을 하면 로봇마다 대답이 천차만별이다.“ 더구나 대처 방법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로봇은 에러 상태로 들어가 작동을 멈춘다.“ 다기능 로봇이 개발될 것은 틀림없지만, 로봇이 제조업과 유통 이외의 분야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중요한 존재가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도 점진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다. 운송, 서비스, 건설 분야에서 노동생산성 성장이 느려지는 것은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세탁한 옷을 개는 일을 생각해보자. 인간에게는 조금 지루할 뿐 아주 단순한 작업이다. 특별한 교육도 필요 없다.
18. 컴퓨터 시대가 초래한 문제는 대량 실업이 아니라 버젓하고 안정적인 중간 수준의 일자리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일자리는 로봇과 알고리즘뿐 아니라 세계화와 해외로 아웃소싱하는 관행으로 피해를 입고 있으며, 아울러 비교적 임금이 낮은 육체노동에서만 일자리가 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룬 느리고 점진적인 경제성장은 지난 10년 동안의 실망스러운 생산성 성장과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심화된 불평등이 결합된 결과다. 다음 장에서는 생산성 성장의 부침을 야기하는 기술적 근원에서 눈을 돌려 미국인들로 하여금 경제 전반에서 시간당 생산량의 성장에 어울리는 실질소득의 증가를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공을 살필 것이다. 이들 역풍은 심화되는 불평등, 교육적 정체, 줄어드는 경제활동참가율, 노화되는 인구의 재정적 수요 등,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벽들이다.
19.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심화된 불평등은 미국인의 생활수준 성장률의 속도를 늦춘 강한 역풍이었다. 이외에도 이 장에서는 교육과 인구와 정부부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세계화,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같은 역풍은 비교적 간단히 지고 넘어가겠다. 그리고 이런저런 역풍이 하나로 합쳐져 미래의 성장을 크게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장의 결론이다. 그런 지연 효과는 17장에서 드러난 혁신의 영향에서 1970년 이후의 침체를 능가하는 수준일 것이다. 
20. 책의 원제목 ‘미국 경제성장의 성쇠’는 성공 뒤에 실패가 이어졌다. 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장의 둔화가 아니라 성장이 그토록 장기간 빠르게 계속되었다는 사실이고, 아울러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서구 유럽의 여러 선진국들보다 생산성에서 계속 선두 자리를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시기보다 더욱 빠르게 발전한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성장의 부침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1770년까지 1,000년 동안 경제성장은 사실상 없었다. 1870년 이전 100 년의 과도기에는 느리게나마 성장이 이루어졌고, 미국의 경우 1970년 으로 끝나는 혁명적 한 세기에는 유독 빠른 성장기 뒤에 느린 성장이 따라 붙었다. 미국의 성장은 1970년 이후 수도가 둔화되었는데, 그것은 발명가들이 총기를 잃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닥나서가 아니라, 그때쯤 음식, 의복, 주택, 운송, 엔터테인먼트, 통신, 건강, 근로 조건 등 현대적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많은 기본적 차원에서 이룰 것이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1. 비용과 빠르게 늘어나는 학생 부채는 미국 고등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부유한 사립대학교는 적지 않은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그래도 2015년에 학생 부채는 1조 2,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젊은이들이 해결해야 할 매달 수백 달러에 이르는 학자금 대출 상환액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해야 하는 모든 계획을 마냥 지연시킨다. 가장 유망한 정책은 학생 부채를 소득세 제제를 통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체제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연방정부의 학자금 대출 제도는 최근에 취업 후 학자금 상환 방식을 도입했지만, 사립학교의 융자는 그런 제도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취업 후 상환 방식을 선택한 학생들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호주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호주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지 않는다. 학생들은 졸업한 후에 비용의 일부를 과세소득의 비율에 따라 소득세 체계를 통해 상환한다. 실업 상태인 기간이나 소득이 일정수준 미만인 경우에는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상환을 연기해준다. 미상환 부채의 20%는 영원히 회수되지 않기 때문에 이 제도는 국가의 보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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